네 살 딸과 함께하는 텃밭 활동
내가 아이와 살고있는 동네는 뒤로는 설악산을 병풍 삼고, 앞으로는 동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진 강원도 속초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슬프게도 이번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워진 지구로 인해 한밤중에도 30℃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요즘 내가 매일 ‘아고 덥다’를 입에 달고 사니 며칠 전엔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여름은 원래 더운 거예요. 여름이 추우면 지구가 아픈 거예요.”
맞네, 맞아. 아무리 여름이 덥다 한들 추운 것보다는 이게 정상이지.
근래 들어 제법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네 살 딸 덕분에 잠시 잊고 있었던 자연의 법칙을 깨닫는다. 우리 부부는 양가 가족 모두 서울이 고향인, 그야말로 서울 토박이다. 그런 우리가 바쁘게 흘러가는 도시에서의 삶이 싫어 ‘슬로우 라이프’를 추구하며 약 4년 전 속초에 내려왔고, 이곳에 내려오자마자 소중한 딸아이를 만났다. 그러다 보니 이왕이면 아이에게도 속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을 주고 싶었다. 예를 들면 아침 호수를 산책하며 듣는 새소리, 해 질 녘 해변에서의 모래놀이, 건강한 흙에서 직접 재배하는 텃밭 음식 같은 것 말이다. 비록 속초에는 백화점 문화센터도 없고, 프랜차이즈 놀이 수업도 없지만 대신 우리나라 대표의 명산과 바다가 있으니 최대한 자연에서 뒹굴며 이 환경을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으로 아이 걸음마가 시작된 시기부터 꾸준히 함께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텃밭 활동이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양양5일장에 가 묘목을 사와 심고, 시시때때로 물을 주며 열매가 열리길 기다린다. 초록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이 되면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텃밭에 나가 사나흘 먹을 만큼의 채소를 따오는데 이렇게 두 해를 보내니 열매를 따는 아이의 손도 부쩍 야무져졌다.
사실 내가 아이와의 텃밭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된 이유는 식생활과 더 관련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3년 전, 첫 이유식을 앞두고 EBS 제작진이 집필한 『아이의 식생활』이라는 책을 읽었다. 패스트푸드, 단 음식, 가공식품이 안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안 좋은지는 정확히 몰랐는데 설탕이 가져오는 소아비만, 환경호르몬이 일으키는 성조숙증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니, 경각심이 생겼다. 게다가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있어 어렸을 적부터 건강한 식습관을 주고 싶은 사명감이 생겼다. 이 책에 의하면 낯선 음식에 대한 공포감을 일컫는 일명 ‘음식 네오포비아’는 만 2세부터 시작되어 5세까지 최고조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은 자연에서 채집과 수렵 활동을 했던 원시시대부터 생긴 생존 본능과 같은 것으로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입에 달고 익숙한 음식만 찾는 편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럼 네오포비아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릴 때부터 다양한 채소를 접하게 하고, 다양한 채소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어 아이가 채소를 안전한 음식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
결국 아이가 알고 있는 낯선 채소의 수를 줄여주는 것이다.”
- EBS 아이의 밥상 제작팀 ‘아이의 식생활’ 中 –
이러한 이유로 나는 7개월부터 아이 주도 이유식을 시작했고 15개월쯤부터 아이와 텃밭에 나갔다. 송알송알 구슬땀을 흘려가며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는 집으로 돌아와 허기진 배를 채워줄 점심 식사의 신선한 재료가 된다. 이날의 점심 메뉴는 면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한 샐러드파스타다. 만 3세가 넘는 시기는 자주성이 발달하는 시기이기에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도록 격려하는 편인데 주로 장 봐온 물건 냉장고 정리하기, 식재료 씻기, 필러로 껍질 벗겨 내기가 대표적이다. 내가 뜨거운 물로 면과 새우를 삶는 동안, 아이는 개수대에서 직접 따온 쌈 채소와 오이를 씻어 손질한다. 이날 처음으로 겨자를 재배했는데 색이 짙어 신기한지, 씻다가 한 번 맛을 보고는 울상 짓는 표정이 귀엽다. 이렇게 직접 채소를 따서 스스로 손질해 먹는 식사는 확실히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는 가지가 있다. 흐물흐물한 식감을 싫어하는 딸은 가지 반찬을 싫어했다. 하지만 예쁜 보라색 꽃에서 열리는 열매가 가지란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한입씩 먹기 시작해 지금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부모의 역할이 많아진 시대지만 씨앗을 뿌리면 그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스스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텃밭의 채소들처럼 딸아이도 이렇게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본다.
육아일기 에디터 | brisa
속초에서 아이를 키우며 천천히 가는 육아를 지향합니다.
네 살 딸과 함께하는 텃밭 활동
내가 아이와 살고있는 동네는 뒤로는 설악산을 병풍 삼고, 앞으로는 동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진 강원도 속초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슬프게도 이번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워진 지구로 인해 한밤중에도 30℃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요즘 내가 매일 ‘아고 덥다’를 입에 달고 사니 며칠 전엔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여름은 원래 더운 거예요. 여름이 추우면 지구가 아픈 거예요.”
맞네, 맞아. 아무리 여름이 덥다 한들 추운 것보다는 이게 정상이지.
근래 들어 제법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네 살 딸 덕분에 잠시 잊고 있었던 자연의 법칙을 깨닫는다. 우리 부부는 양가 가족 모두 서울이 고향인, 그야말로 서울 토박이다. 그런 우리가 바쁘게 흘러가는 도시에서의 삶이 싫어 ‘슬로우 라이프’를 추구하며 약 4년 전 속초에 내려왔고, 이곳에 내려오자마자 소중한 딸아이를 만났다. 그러다 보니 이왕이면 아이에게도 속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을 주고 싶었다. 예를 들면 아침 호수를 산책하며 듣는 새소리, 해 질 녘 해변에서의 모래놀이, 건강한 흙에서 직접 재배하는 텃밭 음식 같은 것 말이다. 비록 속초에는 백화점 문화센터도 없고, 프랜차이즈 놀이 수업도 없지만 대신 우리나라 대표의 명산과 바다가 있으니 최대한 자연에서 뒹굴며 이 환경을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으로 아이 걸음마가 시작된 시기부터 꾸준히 함께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텃밭 활동이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양양5일장에 가 묘목을 사와 심고, 시시때때로 물을 주며 열매가 열리길 기다린다. 초록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이 되면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텃밭에 나가 사나흘 먹을 만큼의 채소를 따오는데 이렇게 두 해를 보내니 열매를 따는 아이의 손도 부쩍 야무져졌다.
사실 내가 아이와의 텃밭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된 이유는 식생활과 더 관련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3년 전, 첫 이유식을 앞두고 EBS 제작진이 집필한 『아이의 식생활』이라는 책을 읽었다. 패스트푸드, 단 음식, 가공식품이 안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안 좋은지는 정확히 몰랐는데 설탕이 가져오는 소아비만, 환경호르몬이 일으키는 성조숙증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니, 경각심이 생겼다. 게다가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있어 어렸을 적부터 건강한 식습관을 주고 싶은 사명감이 생겼다. 이 책에 의하면 낯선 음식에 대한 공포감을 일컫는 일명 ‘음식 네오포비아’는 만 2세부터 시작되어 5세까지 최고조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은 자연에서 채집과 수렵 활동을 했던 원시시대부터 생긴 생존 본능과 같은 것으로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입에 달고 익숙한 음식만 찾는 편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럼 네오포비아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릴 때부터 다양한 채소를 접하게 하고, 다양한 채소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어 아이가 채소를 안전한 음식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
결국 아이가 알고 있는 낯선 채소의 수를 줄여주는 것이다.”
- EBS 아이의 밥상 제작팀 ‘아이의 식생활’ 中 –
이러한 이유로 나는 7개월부터 아이 주도 이유식을 시작했고 15개월쯤부터 아이와 텃밭에 나갔다. 송알송알 구슬땀을 흘려가며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는 집으로 돌아와 허기진 배를 채워줄 점심 식사의 신선한 재료가 된다. 이날의 점심 메뉴는 면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한 샐러드파스타다. 만 3세가 넘는 시기는 자주성이 발달하는 시기이기에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도록 격려하는 편인데 주로 장 봐온 물건 냉장고 정리하기, 식재료 씻기, 필러로 껍질 벗겨 내기가 대표적이다. 내가 뜨거운 물로 면과 새우를 삶는 동안, 아이는 개수대에서 직접 따온 쌈 채소와 오이를 씻어 손질한다. 이날 처음으로 겨자를 재배했는데 색이 짙어 신기한지, 씻다가 한 번 맛을 보고는 울상 짓는 표정이 귀엽다. 이렇게 직접 채소를 따서 스스로 손질해 먹는 식사는 확실히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는 가지가 있다. 흐물흐물한 식감을 싫어하는 딸은 가지 반찬을 싫어했다. 하지만 예쁜 보라색 꽃에서 열리는 열매가 가지란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한입씩 먹기 시작해 지금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부모의 역할이 많아진 시대지만 씨앗을 뿌리면 그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스스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텃밭의 채소들처럼 딸아이도 이렇게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본다.
육아일기 에디터 | brisa
속초에서 아이를 키우며 천천히 가는 육아를 지향합니다.